스토리

다카치호정(高千穂町)의 선인이 쌓아 올린 토대를 면면히 계승하고 있는 산복용수로(山腹用水路)

수토리네트(水土里ネット) 다카치호 이사장 다사키 고헤이 씨(田崎 耕平)

사람들의 생활을 지지하고 있는 「500㎞」

「일본의 계단식 논 백선」에도 선정 된 다카치호정 · 시바야마의 계단식 논. 계단의 경사를 덮는 1,800ha 의 밭은 사계절의 다양한 표정을 보이며, 한가로운 산골의 풍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산 넘어 산인 이 땅에서 논에 물을 공급하는 것은, 산의 윤곽을 따라 교묘하게 이어놓은 총길이 500㎞에 이르는 산복용수로입니다.

이번에는 1896 년에 물을 개통한 「이와카와 용수(岩川用水)」와 1921년에 개통한 「고지 용수(高地用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와카와 용수 개통의 이야기

에도시대 말기, 이 표고가 높은 경사지에 사는 사람들이, 물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수기에는 물을 찾아, 등에 통을 실은 소를 끌어서, 골짜기를 흐르는 이와토 강(岩戸川)까지 왕복 4㎞ 남짓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생활 용수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이 땅에서는, 벼농사도 힘듭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 미타이(三田井) 지역에 사는 당시 44 세의 후쿠시마 타츠야 씨(福嶋辰弥)였습니다.

1869 년 후쿠시마 씨는 「이와토 강의 상류에서 물을 끌어 용수로를 건설하자」고 주민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용수로가 있으면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어, 논을 확장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주민들은, 찬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산복용수로 관리를하고 있는 『수토리(水土里)네트다카치호』의 이사장 · 다사키 고헤이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에 이 지역에서는, 대부분의 생활 용수를 시내에서 얻고 있어 생활에 불편함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만큼 사람들의 물과 쌀에 대한 마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막대한 비용이 들며, 건설 기계 등이 없었던 시대에 『이토록 긴 거리의 용수로를 만드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쿠시마 씨의 제안은, 당시 주민에게 "꿈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선인의 노력이 가져다 준 물

주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용수로 건설이 지역의 부흥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될 것을 굳게 믿었던 후쿠시마 씨는, 자력으로 사람과 자금을 모아, 굴착작업을 결의.
밤낮으로 설득하기를 수십 년, 겨우 「같이 용수로를 완성 시키자」라는 마을의 유지 83 명을 모았습니다.

1879년에는, 83 명 전원의 소유 밭를 저당 잡혀 비용을 마련.
그후 차근 차근 준비하여 8년후, 후쿠시마 씨 62 세의 나이에, 드디어 용수로 개통 공사에 착수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위를 깎아 터널을 파고, 오지의 산에 수원(水源)을 만드는 공사는 곤란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후쿠시마 씨는 동지들과의 모임 때는, 자신의 집을 내 주어서 음식을 제공하고 그들을 격려하면서 스스로 공사의 지휘를 맡아 쉴 새없이 일을 계속 했습니다.

피나는 노력과 거액의 개인재산을 투자한 끝에, 마침내 길이 17 km에 이르는 「이와카와 용수」가 완성. 착공 후 9 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용수로에 의해 지역 주민들의 생활은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시내 주변에 겨우 8개 정도의 논이 있었는데, 용수로가 생긴 덕분에 120 정 (약 150 배)까지 많아졌다고 합니다.」라는 다사키 씨.
처음에 굴착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모두, 후쿠시마 씨에게 감사했다고 합니다.

1910 년, 후쿠시마 씨는 노쇠하여 87 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이듬해 생전의 공적이 평가되어 정부로부터 「감수 포상」을 받았습니다.

계승하는 마음

그 이후 40여 년의 세월에 걸쳐, 현재의 모든 용수로가 완성. 그 후에도 콘크리트로 보강 공사를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수토리네트 다카치호』의 조합원과 지역 주민의 협력으로, 유지・관리되고 있습니다.
「용수로를 7 개로 나누어, 각 구간을 각각 분담하여, 4 월 물 수요기 전에 진흙을 퍼올리고,  1 년에 세 번 풀 베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호우와 강풍 등의 경우에는 순찰을 하여, 수문의 개폐와 수로의 낙하물을 제거하고, 물이 넘치는 것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바위를 도려내기만 한 터널이나 가파른 경사지 등, 발 딛기 어려운 장소도 있어, 순찰이나 정비에도 상당한 중노동이지만, 용수로의 재해풍화를 막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선인들의, 그야말로 힘든,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생으로 만들어 낸 용수로입니다.
그것이 대대로 관리되고 계승되어, 지금도 이 지역의 생활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선인들의 마음이 담긴 용수로를, 다음 세대에 최대한 유지하기 쉬운 형태로 바톤 터치를 하고 싶습니다.」

풍부한 친수(親水)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사람들의 손을 거쳐, 소중히 지켜온 수로의 물은, 놀라 울 정도로 맑고, 많은 생물들의 보금 자리이기도합니다.
보수 공사를 할 때에도, 굳이 일부 덤불을 남겨서, 작은 물고기 등이 서식하기 쉽도록 궁리를 하고 있다고 다사키 씨는 말합니다.
「지역 초등학생들을 불러서, 산천어 잡기와 조리 체험을 실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평소 좀처럼 할 수 없는 체험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렸어요.
앞으로 더욱 여러 방면으로 이 수로가 다음 세대에도 "치유"와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대처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